노후독서 5권 [ 이방인 ]
내가 대학교에 입학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가이름이 알베르 카뮈였다.
이제 60살을 맞아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읽는다.
책은 한번을 정독, 메모하고
소감을 정리하기 위해 메모된 내용을 다시 책에서 읽어보는 것으로 정리하고 있다.
책을 정독하고 나는 알 수없는 무언가 답답함을 느꼈다.
어릴 때의 치열함을 상징했던 "부조리"란 단어가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에게는 "무관심", "나만의 세계(폐쇄된 세계)"가
떠오르는 것은 세월 탓일까?
나는 이책을 추천하지 않는다!
알베르 카뮈의 시대적 배경과 살아온 과정이 궁금하였는데
책에서 작가와 작품에 대한 자료를 정말 많이 할애하여 149~288Page에 적어놓았다.
소감을 정리하기 전에 카뮈가 이야기 한 것을 정리해 본다.
"이방인" 이야기의 줄거리는
알제리에서 주인공(뫼르소, 프랑스 이민으로 추정)이
아랍인 한 사람을 살해하였다.
재판을 통해 "교수형"으로 선고를 받고, 형이 집행되기 전 까지의 이야기이다.
[ 1954년 "이방인"에 대한 편지 (page149~152) ]
※ "이방인"을 각색해 보겠다는 독일 독자에 대한 카뮈의 답장
1) 살인장면이 무대에 나타나 보이지 않는다면 곤란합니다.
우선 그 대목은 이야기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태양이 가득한 살인이며
여기서 태양은 그것을 중심으로 해서 드라마가 전개되도록 만들어진,
그야말로 중심입니다.
드라마는 그 뜨거운 조명을 받음으로써
카프카식의 어둠침침하고 현실과 거리가 있는 이야기로 변질해 버리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 카프카식(표현주의)
객관적인 사실보다 사물이나 사건에 의하여 야기되는 주관적인 감정과 반응을 표현
2) 연극에서 독백에 대한 의견
"이방인"은 사실주의도 아니고 환상적 장르도 아닙니다.
나로서는 오히려 육화된 신화, 그것도 삶의 살과 열기 속에 깊이 뿌리내린 신화라고 봅니다.
여기서 정면으로 공격받고 있는 대상은 윤리가 아니라 재판의 세계입니다.
재판의 세계란 부르주아이기도 하고 나치이기도 하고 공산주의이기도 합니다.
뫼르소로 말하자면 그에게는 긍정적인 그 무엇이 있습니다.
그것은 죽는 한이 있더라도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거부의 자세입니다.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있지도 않은 것을 있다고 말하는 것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
자기가 아는 것보다 더 말하는 것에 동의하는 것도 의미합니다.
[ 1955년 미국판 서문... 알베르 카뮈 (page153~155) ]
나는 오래전에 "이방인"을 나 스스로도 매우 역설적이라고 인정하는 ...
" 우리사회에서 자기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사형 선고를 받을 위험이 있다."
절대에 대한, 진실에 대한 정열이 그것이다.
이것은 아직 소극적인 참으로 존재한다는 진실, 느낀다는 진실이다.
그러나 그 진실이 없이는 자아와 세계에 대한 그 어떤 정복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그 어떤 영웅적인 태도를 취하지는 않으면서도 진실을 위해서는 죽음을 마다하지 않는
한 인간을 "이방인"속에서 읽는다면 크게 틀린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 1957년 스톡홀름에서 노벨 문학상을 받으면서.. (page183) ]
나는 처음 시작 때부터 내 작품세계의 정확한 계획을 세워 가지고 있었다.
나는 우선 부정(否定, 부조리)을 표현하고자 했다. 세가지 형식으로.
소설로는 "이방인", 극으로는 "칼리굴라"와 "오해", 사상적으로는 "시지프 신화"였다.
나는 또 세가지 형식으로 긍정(반항)을 표현하기로 예정하고 있었다.
소설로는 "페스트", 극으로는 "계엄령", "정의의 사람들", 사상적으로는 "반항하는 인간"이었다.
나는 그때부터 벌써 사랑의 주제를 중심으로 하는 세번째 층도 막연하게나마 생각했다.
※ 작가의 뜻하지 않은 죽음으로 세번째 층은 실현을 보지 못했다.
[ 알베르 카뮈의 생애 ]
알베르 카뮈(1913년~1960년)는 프랑스 이민가족으로
알제리 본도비에서 출생하여 프랑스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
알제리는 1830년~1962년 독립될 때까지 프랑스령 식민지였으므로
카뮈는 프랑스 식민지령(알제리)에 태어난 프랑스 사람이다.
1942년 "이방인"을 출간하고 195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문학, 연극(희곡), 언론분야에 종사하였으며
서민(노동자)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카뮈는 알제리의 독립에 어떠한 입장이었을까?
프랑스 지배 유지, 알제리 독립이란 두개의 입장에서
프랑스의 자치국가(연방)라는 모호한 입장을 취하였다.
(세부 연혁)
1913년 프랑스 이민가족으로 알제리 몬도비에서 출생
1933년 반 파시시트 운동
1935년 공산당 입당
1937년 반식민주의 운동을 우선순위에서 제외하자 공산당에 탈당
1942년 "이방인", "시지프 신화" 출판
1943년 독일 레지스탕스 지하신문 "콩바" 활동 가담
1944년 "칼리굴라", "오해" 출판
1945년 파리해방 (독일에 부역한 자에 대한 숙청의 필요성 역설)
1945년 누벨 리테레르지 인터뷰 "나는 실존주의자가 아닙니다" (샤르트르 철학과 거리를 둔다)
1947년 "페스트" 출간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책)
1948년 "계엄령" 초연,
1949년 "정의의 사람들" 초연,
1951년 "반항하는 사람들" 출판
1954년 알제리 민족주의 봉기 시작
1955년 알제리의 프랑스연방 소속을 확인하는 정치적 해결책을 호소
1957년 노벨문학상 수상 "나는 정의를 믿는다. 그러나 정의보다 먼저 나의 어머니를 옹호하겠다"
1960년 교통사고로 사망
[ 총 평 ]
"이방인"은 1부(살인의 과정), 2부(재판의 결과와 집행대기)로 나누어진다.
즉, 주인공인 뫼르소의 살인과 재판에 대한 결과에 대하여 생각을 정리하면 된다.
솔직히 나는 뫼르소가 사회적으로 매우 위험한 거의 싸이코패스에 가까운 인물이라 생각한다.
재판과정에서
그날 내가 자연스러운 감정을 억제했다고 말할 수 없고,
내가 행동을 후회라기 보다는 차라리 좀 귀찮다 싶은 느낌이라고 말하고,
내가 그런 행동을 하게 된 동기를 태양 때문이라고 하고,
나는 죄가 무엇인지 모른다고 말하고,
내가 처형되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모여들어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나는 지금까지 "부조리"란 나에게 극복하기 어려운 상황이 존재하지만
끊임없이 자기의 존재를 찾아가려 하는 것으로 이해를 하였으나,
"이방인"에서 뫼르소가 하는 행동과 생각을 정리해 보면
"무관심", "나만의 세계(폐쇄된 의식)"란 단어가 생각이 날까?
1부
1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양로원으로부터 전보를 한 통 받았다. " 모친 사망, 명일 장례식, 근조 "
나는 사장에게 이틀 동안의 휴가를 청했는데..
그러나 좋아하지 않는 눈치였다.
" 그건 제 탓이 아닙니다. "
그것은 습관 때문이었다. .... 엄마는 울었을 것이다.
지난해에 내가 거의 양로원에 가지 않은 것도 약간은 그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한 일요일을 빼앗기기 때문이기도 했다.
관을 닫아 놓았습니다만, 어머니를 보실 수 있도록 나사못을 풀어 드려야지요.
나는 제지했다. 안 보시렵니까? "네". 왜요? 나는 말했다. "모르겠습니다."
엄마 일만 없었다면 산책하면서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관을 닫으라고 할 생각인데, 그 전에 마지막으로 어머님을 보겠는가?
나는 아니라고 말했다.
당신 어머닌가요? 나는 또 "네"라고 말했다.
연세가 많으셨나요? 나는 정확한 나이를 몰라서 "그렇죠, 뭐"하고 대답했다.
마침내 버스가 알제라는 빛의 둥지 속으로 돌아오고 그리하여 이제는 잠자리에 들어
열두시간동안 실컷 잘 수 있겠구나하고 생각했을 때 내가 느꼈던 기쁨이었다.
어머니가 양로원에서 3년 있다가 돌아가셨는데
방문도 거의 안하고, 돌아가신 어머니도 보지를 않고, 나이도 모르고...
돌아오면서 아~ 이제 실컷 잘 수 있겠다. 생각하는 사람이 정상인가?
2
잠에서 깨어 수영을 하러 갔는데 마리 카르도나를 만났다.
저녁에 영화를 보고 집으로 같이 와서 함께 했다.
나는 여느 때처럼 셀레스트네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틀림없이 사람들이 여러 가지 질문을 할 텐데 나는 그세 싫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함께 살 때는 알맞은 아파트였다.
나는 이제 내 방에서만 지낸다. 그 밖의 것들은 모두 방치돼 있다.
나는 언제나 다름없는 일요일이 또 하루 지나갔고,
이제 엄마의 장례가 끝났고,
나는 다시 일을 하러 나갈 것이고,
그러니 결국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나에게는 달라지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3
직장 점심때 셀레스트네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셨다.
같은 층에 사는 이웃인 살라마노 영감과 마주쳤다. 영감은 개를 데리고 있었다.
같은 층에 사는 또 다른 이웃인 레몽 생테스가 들어왔다. 직업이 "창고 감독"이라 한다.
레몽은 여자가 속임수가 있다고 생각하고 여자를 혼내주고 싶었다.
레몽은 여자가 돌아오게 되면, 그때는 여자와 잠자리를 같이하고는
막 끝나려 할때 여자의 낮짝에다 침을 뱉고 밖으로 내쫒아 버린다는 것이었다.
내가 보기에 과연 그렇게 하면 여자에게는 징계가 될 것 같았다.
그러나 레몽은 자신이 적절한 편지를 쓸 능력이 못 되는 것 같아...
나는 편지를 썼다.
레몽과 여자의 이야기를 듣고 레몽의 의견이 맞다고 생각하여 편지를 써 동참한다.
4
미리는 나에게 자기를 사랑하는냐고 물었다.
그건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지만, 아닌 것 같다고 나는 대답했다.
레몽은 돌아온 여자를 폭행하고 경찰들이 왔다.
레몽은 여자가 그를 무시했다고 말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증인을 서 주시로 했다.
뫼르소는 여자친구의 "사랑하냐?"는 질문에 아닌 것 같다고 대답한다.
5
레몽이 알제 근처의 조그만 별장에서 일요일 하루를 지내자고 나를 초대했다.
사장은 내게 삶의 변화에 흥미를 느끼지 않느냐고 물었다.
나는, 삶이란 결코 달라지는 게 아니며, 어쨌건 모든 삶이 다 그게 그거고,
또 나로서는 이곳에서의 삶에 전혀 불만이 없다고 대답했다.
마리가 찾아와서, 자기와 결혼할 마음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마리가 원한다면 우리가 결혼할 수도 있을 거라고 말했다.
살라미노 영감은 내가 어떤사람인지 잘 알며, 내가 엄마를 몹시 사랑한다는 것도 안다고 했다.
지금도 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지금까지 그 점에 대하여 사람들이 나를 안 좋게 본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으며,
그렇지만 나는 엄마를 돌볼 사람을 둘 만한 돈이 없었으므로 양로원이 당연한 것으로 보였다고 대답했다.
6
뫼르소, 마리, 레몽, 마송(레몽 친구), 마송의 아내 5명이 마송의 별장에 모였다.
레몽, 마송, 뫼르소가 아침식사와 술을 먹고 해변가로 내려왔다.
아랍인 두명이 다가오자 레몽과 마송은 두사람과 싸움이 일어났고
레몽은 아랍인 한명의 칼에 팔과 입에 상처를 입었다.
레몽이 의사에게 치료를 받고 해변을 뫼르소와 함께 걸었다.
바닷가 맨 끝에 조그만 샘에 이르게 되었다.
거기서 우리는 좀 전의 두 아랍인을 발견했다.
내가 레몽에게 말했다.
"안 돼. 남자 대 남자로 맞상대해야지. 그리고 그 권총은 이리 줘.
만약에 다른 녀석이 끼어들거나 저 녀석이 칼을 뽑으면 내가 쏘겠어."
그러나 갑자기 아랍인들이 뒷걸음질을 쳐서 바위 뒤로 사라졌다.
나는 그와 함께 별장까지 갔고, 그가 나무 층계를 올라가는 동안 첫 계단 앞에 그대로 서 있었다.
머릿속에서 태양이 꽝꽝 울렸고, 힘들게 그 나무 층계를 걸어 올라가서 또다시 여자들과
대면할 생각을 하니 그만 맥이 풀렸던 것이다.
여기 가만히 서 있든 자리를 뜨든 결국 매한가지인 것이었다.
잠시 후 나는 다시 바닷가 쪽으로 돌아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바위 뒤의 서늘한 샘을 생각했다.
태양과 힘겨운 노력과 여자의 울음소리에서 벗어나고 싶었으며,
그늘과 휴식을 되찾고 싶었다.
나는 레몽의 상대가 되돌아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혼자였다. 그는 반듯이 드러누워, 두 손으로 목덜미를 괴고...
나는 내가 뒤로 돌아서기만 하면 일은 끝난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샘 쪽으로 몇 걸음을 내디뎠다.
불로 지지는 것 같은 그 뜨거움을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서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랍인이, 몸을 일으키지는 않은 채 칼을 뽑더니 태양 빛 속에서 나를 향해 쳐들었다.
눈썹에 고여 있던 땀이 단번에 눈꺼풀 위로 흘러내려서 미지근하고 두꺼운 막으로 눈꺼풀을 뒤덮었다.
내 두 눈은 이 눈물과 소금의 장막에 가려서 캄캄해 졌다.
나는 다만 이마 위에서 울리는 태양의 심벌즈 소리,
그리고 내 앞의 칼에서 여전히 뿜어져 나오는 눈부신 빛의 칼날을 어렴풋이 느낄 뿐이었다.
모든 것이 기우뚱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나의 전 존재가 팽팽하게 긴장했고 나는 손으로 권총을 꽉 그러쥐었다.
방아쇠가 당겨졌고...
나는 내가 대낮의 균형과, 내가 행복을 느끼고 있었던 어느 바닷가의
그 특별한 침묵을 깨뜨려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그 움직이지 않는 몸에 다시 네 발을 쏘았다.
이방인에서 가장 중요한 살인의 장면을 자세하게 정리해본다.
아랍인 두명이 별장에 따라왔고..
첫번째, 뫼르소/레몽/마송이 바닷가에서 만나 싸움을 하고 마송이 다친 상태로 별장에 돌아왔다.
두번째, 레몽이 치료를 끝내고 뫼르소/레몽(권총소지)이 바닷가를 산책 중
두명의 아랍인을 다시 만나지만 별장으로 돌아온다. (이때 권총은 뫼르소에게 있음)
세번째, 별장 앞에서 뫼르소는 다시 바닷가 산책을 가서 칼을 소지한 아랍인을 만나 살인을 하게 된다.
이 장면을 생각하면 세번째 칼은 소지한 아랍인은 총을 가진 뫼르소를 알고 있기 때문에
칼을 뽑아 다가오지 못하도록 위협을 한 것으로 보인다.
뫼르소는 위협을 받자 어느 순간 총을 발사하고...
본인이 이런 균형, 행복, 특별한 침묵을 깨뜨렸다는 생각에 다시 총 네발을 추가로 발사한다.
뫼르소는 샘터에서 아랍인을 만났을 때 왜 돌아서지 않았을까?
2부
1
내가 변호사를 선임했는지 알고 싶어 했다.
나는 내 사건이 지극히 간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나는 내 감정이 어떤지 살펴보는 습관 같은 건 별로 없기 때문에...
아마도 나는 엄마를 사랑했겠지만 그러나 그런 것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정상적인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많게건 적게건 바랐던 적이 있는 법이다.
내가 원래 육체적 욕구에 감정이 방해받는 일이 많은 천성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날 내가 자연스러운 감정을 억제했다고 말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아뇨. 그건 사실이 아니거든요." 나는 대답했다.
나는 귀찮아서 그러는 걸 포기하고 말았다.
내가 한 행동을 후회하는냐고만 물었다.
나는 잠깐 생각해 본 뒤, 진정한 후회라기보다는 차라리 좀 귀찮다 싶은 느낌이라고 대답했다.
2
3
피고인은 무기를 지니고 있었으며, 왜 다름 아닌 바로 그 장소로 되돌아간 것입니까?
나는 우연이라고 대답했다.
4
나는 사실은 그저 생각나는 대로, 아랍인을 죽이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말했다.
내가 그런 행동을 하게 된 동기를 분명하게 말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빠르게, 그것은 태양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판장이 나는 프랑스 국민의 이름으로 공공 광장에서 목이 잘리게 된다고 말했다.
재판장이 나에게 덧붙일 말이 없느냐고 물었다.
나는 잠시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대답했다. "없습니다."
5
어차피 죽는 바에야 어떻게 죽든, 언제 죽든 그런 건 당연히 문제가 아니다.
사제는 "왜 나의 면회를 거절하지요?" 그가 말했다.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나는 내가 정말로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을지 몰라도,
무엇에 관심이 없는지는 절대적으로 확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너무나 절망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나는 절망한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다만 나는 두려울 뿐이었고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당신은 그럼 아무 희망도 갖지 않나요?
죽으면 완전히 죽어 없어진다고 생각하면 살고 있는 건가요? 나는 "네"하고 대답했다.
나는 죄가 무엇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토록 죽음이 가까운 시간에 그곳에서 엄마는 마침내 해방되어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준비가 되었다고 느꼈던 것 같다.
내가 처형되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모여들어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뿐이었다.
재판과정에서
그날 내가 자연스러운 감정을 억제했다고 말할 수 없고,
내가 행동을 후회라기 보다는 차라리 좀 귀찮다 싶은 느낌이라고 말하고,
내가 그런 행동을 하게 된 동기를 태양 때문이라고 하고,
나는 죄가 무엇인지 모른다고 말하고,
내가 처형되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모여들어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 책표지 (이방인) ]